SURVEY

김범에 대하여

월간미술 2026년 2월호

여러 매체를 가로지르는 김범의 작품 속 주인공은 대개 망치, 빗자루, 성냥, 주전자 등 평범한 사물이나 잘 안다고 믿는 동물들, 막대인간에 가깝게 도식화된 익명의 인물이다. ‘도구는 쓰이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변모한다’와 같은 자명한 명제는 쉬이 소모되는 재료로 재배치되고, 소박한 표현법은 보는 이의 경계를 늦춰 눈앞에 놓인 것을 곧이곧대로 따르도록 한다. 이렇게 수월하게 진입한 그의 작업 세계는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교훈도, 구체적으로 추적할 입장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전시장을 나올 때 주어진 환경이 미묘하게 뒤틀려 보이고 다가오는 말과 글의 모순이 도드라져 보이는, 그리하여 씰룩씰룩 실소가 베어 나오는, 다소 각성된 상태가 될 따름이다. 

김범의 작품을 특징짓는 표현의 소박함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사유의 정밀함의 낙차로 인해 작업의 핵심이 관념에 있다고 해석되거나 한국식 개념미술의 선두로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가 자아내는 정밀함은 다분히 물질적이다. ‘어떤’ 빗자루가 아닌 수 시간 공을 들여 부조를 새긴 ‘그’ 빗자루, 제작 당시의 환경을 반영하는 얼룩이 보존되고 특정한 방식으로 그림자가 지도록 설치된 캔버스, 그리고 관객의 머무름을 헤아려 배치한 쭈글쭈글한 종이가 우리를 예리한 상태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중한 조형이 발휘하는 영민함은 제작 당시의 시대상을 증류해 내는 한편 포용력을 발휘한다. 90년대 수입되어 열풍을 일으킨 밥 로스의 회화 튜토리얼을 상기하는〈”노란 비명”그리기〉(2012)가 유튜브를 통해 흔히 튜토리얼을 접하고 활용하는 현재 젊은 대중 관객 사이에 반향을 일으킨 것이 일례다. 나아가 근대 이후 아시아의 정체성과 국제 정세를 사유하며 인간 독자에게 나무, 표범, 에어컨 등이 되는 법을 일러주는 『변신술』(1996)은 탈고정적인 존재론과 변형의 사유를 촉구하는 현대 철학자 캐서린 말라부(Catherine Malabou)의 가소성(plasticity) 개념과 접속할 여지를 주고, ‘교육된 사물들’ 연작(2010)을 비롯한 여러 작품은 당시 ‘애니미즘’으로 설명되었지만 나아가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탈피하고자 한 신유물론적 생기론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무제(뉴스)〉(2002)는 대중매체가 발휘하는 독단적인 영향력을 꼬집는 작품이지만, 지상파 뉴스의 주도권이 와해되고 소셜미디어의 에코 챔버 효과가 시대적 문제로 부상한 오늘날 미디어 초상으로도 작동한다. 김범의 작품은 물질 세계에 기반하기를 고집하기에 시대적 감각을 경유하면서도 특정한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처럼 그의 작업은 각기 다른 맥락에 기꺼이 이식되며, 재치를 잃지 않은 채, 읽히고 또다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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