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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프로젝트 - 행위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전곡선사박물관, 연천, 2021) 중 ‘각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예사가 키워드 “행위”에 대하여 작성한 몸글에 각주를 작성함

고고학은 행위의 흔적[1]인 물질문화를 통해 인간 행위를 복원하고, 과거를 해석하고자 합니다. 과거의 잔존물인 물질문화는 무언(無言)의 대상으로서 존재하지만, 고고학자는 그 대상에게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문화의 형성과 지속, 변동에는 인간의 행위가 관여합니다. 반복적인 행위는 물질문화의 패턴을 만들고, 문화로서 구별 짓게 합니다. 이러한 문화가 지속되는 데에는 아비투스(Habitus)의 발현으로서의 행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내적 공통의 구조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고, 그들만의 물질문화가 연속되게 합니다. 그러나 물질문화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행위의 결과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화변동과 물질문화의 다양성은 인간의 구조화된 행위를 넘어 다른 동인을 추론하게 합니다.[2]

행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사유하는 인간은 둘러싼 환경에 대해 반응하고, 의식적으로 선택합니다. 선택의 차이는 행위의 변화를 이끌며 물질문화에 반영됩니다. 고고학은 물질문화의 변이를 이끈 행위의 이면에 담긴 단서들을 추적합니다. 환경적인 변화의 도래, 농업의 발생, 도시의 출현 등 중요한 사건들을 고려합니다.

행위의 흔적인 유물은 마음속에 지닌 공통된 어떤 것의 표출일 수 있으며,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구조화되는 동시에 구조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인간과 인간이 남긴 흔적에는 어떠한 관계가 존재하며, 인간의 행위는 복잡하고 상징적입니다.[4] 유물을 해석하는 고고학자의 행위도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물질문화는 고고학자의 다양한 시선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며 존재합니다.

참고 문헌

마이클 오브라이언・리 라이맨, 성춘택 역, 『다윈 진화고고학』, 나남, 2009.
브루스 트리거, 성춘택 역, 『브루스 트리거의 고고학사』, 사회평론, 2010.
올리버 해리스・크레이그 시폴라, 이성주 역, 『이론 고고학: 21세기 연구 동향과 새로운 모색』, 사회평론아카데미, 2019.
클라이브 캠블, 성춘택 역, 『기원과 혁명: 휴머니티 형성의 고고학』, 사회평론, 2013.


[1] 흔적으로서의 물질문화와 그것을 배태한 과거는 형이상학적 사고의 습관과 제도에 의해 기표와 기의의 이분법적 정식에 놓인다. 흔적이 결정화된 과거를 머금고 있다는 전제, 유물은 과거에서부터 우리에게 보내온 편지라는 믿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선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가상적 조건. 하지만 두 항 간의 임의성은 이러한 믿음을 배신하고 만다. 데리다가 제시한 흔적(trace)은 ‘그것’이 아닌 것이 새겨짐으로 인해 ‘그것’이 정체화된, 언제나 물러나 있는 의미와 현전을 상기한다. 무한정의 유예를 가리키는 한편 추적을 따돌리는 흔적은 진리를 발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성가신 수수께끼이며, 그것을 만나지 않고자 하는 이들, 즉 정당한 두려움을 지닌 이에게는 축복이다. 흔적의 끝없는 밀려남이 곧 우리의 미래 또한 가능하게 할 것이므로. 한 시대에 내린 닻이 영원토록 고정될 수 없다는 점에 현재의 우리 또한 위안을 얻을 것이므로.

[2] 비인간 행위자를 포함한 평평한 존재론을 주장한 레비 브라이언트는 객체의 잠재력 혹은 역량에 주목한다. 이때 잠재력이란 가능성보다 더 과격한 내재성으로, 브라이언트에 의하면 객체는 개별적인 성질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잠재적 고유 존재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마주하는 객체의 어떤 모습은 잠재적 고유 존재의 국소적인 표현이며, 전자로부터 후자를 섣불리 예측하거나 후자로부터 전자를 연산해낼 수 없다. 객체는 다른 존재자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활성화되며, 이는 단지 가능성이 실현되는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다. 창조적 과정으로서의 현실화는 물질문화를 분석하는 일, 그중에서도 통상적으로 ‘해석’이라는 단계로 인식되지 않는 다분히 물리적이고 기초적인 과정조차 창발적인 것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발굴의 과정에서 어떤 물질을 다른 것(이물질)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것, 특정한 파장을 지닌 빛에 비추어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마땅히 보존될 수 있는 환경에 놓는 과정까지 말이다.

[3] 활력 없는 물질과 생동하는 생명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넘어 생동하는 물질과의 관계로 세계를 보고자 한 제인 베넷은 스피노자의 의욕적 신체 개념에 기대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태피스트리를 직조해낸다. 스피노자는 모든 사물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는 대신 동일한 실체의 양태(들)로 본다. 의식이 있는 사물과 없는 사물, 나아가 생명이 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 모두 원시-신체가 형성하는 서로 다른 양태들이며, 이들 모두가 의욕적이다. ‘의욕적’으로 움직이는 사물 외에도 장시간 휴면 상태에 돌입한 사물 또한 이에 가해지는 외력을 견뎌내는 창조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의욕적인 신체로서 인간 존재는 때로는 이질적인 신체와 연합하여 환경적 배치를 변화하는 한편 현재의 양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행위를 견뎌내며 창조적 상쇄를 지속한다.

[4] 현대미술 담론에서 퍼포먼스는 현장성과 단발성에 의해 여타 예술 형식과 구별되며, 심지어 그 재현불가능성이 자본의 순환과 대량생산의 고리를 끊어낸다는 점에서 급진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급진적인 퍼포먼스는 주로 신체와 움직임을 현재, 현전으로서 마주하는 경험의 단위, 즉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사건으로 한정하여 논의되곤 한다. 이러한 퍼포먼스 담론은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물과 몸, 정적인 상태와 동적인 상태를 불화하는 항으로 두곤 하지만, 퍼포먼스의 현전성이 결코 사물의 수행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물이 유지하는 특정한 양태와 여타 존재자와의 배치 속에서 수행하는 표현 또한 미끄러짐 없이 반복될 수 없으며(=미끄러질 때 비로소 반복되며), 등가교환의 경제에 안일하게 포섭되지 않는다. 사물의 행위가 퍼포머의 동작만큼이나 속절없이 증발한다는 것은 고고학자가 그 누구보다 더 힘주어 보증하지 않을까.

각주의 참고문헌

레비 R. 브라이언트, 『객체들의 민주주의』, 김효진 역, 갈무리, 2021.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김성도 역, 민음사, 2010.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역, 현실문화, 2020.
Peggy Phelan, Unmarked: the Politics of Performance,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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