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EY
권동현×권세정이 되어가는 길
May 2025
개를 따라가기: 돌봄의 재구성과 사변적 기원의 탐색
권동현과 권세정은 얼마간 각자 작품활동을 지속하다 수년을 함께 한 개의 죽음과 반려동물 케어 로봇을 들인 경험을 계기로 함께 작업하기로 한다. 물론, 오래도록 서로 작업을 지켜보고 도움을 주고받았던터 이미 서로의 작업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으나, 살을 맞대어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작은 존재의 자리로 함께 가기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다.
초기 공동 작업 〈세디, 도도와 만나는 방법〉(2021-2024)은 감각과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한, 몇 걸음조차 힘겨워하는 앙상한 강아지를 따라간다. 하지만 이 존재를 지켜보는 로봇의 시선을 개입시키고, 그 로봇에 사람의 가면을 씌워 하이브리드 신체를 제안함으로써 인간중심-가족주의를 빗겨나간다. 이는 반려동물을 ‘가족’이라 일컬으며 극진한 대우를 하지만 가족 내 적당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가령, 집안의 ‘막내’로서의 강아지—다른 종의 개체를 가정에 편입시키는 관습은 현대 사회에 보편적이고도 강렬한 정서로 자리 잡은 나머지 전면 부정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다만, 권x권은 어쩐지 보편 정서에 반하지만 충분히 기능적인, 형용 모순으로 들리는 ‘돌봄 로봇’의 존재로 인간 및 비인간 가족 구성원 사이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관습적 시선으로부터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로봇은 원격으로 사람이 로봇의 시선에서 개를 찾아 말을 걸고, 그 반응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탑재했다. 그런데 이러한 접속 기능은 개에게 혼란을 초래하는 한편,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구성원이 멀리 떨어진 이들과 소통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기계에 해상도 높은 인간 가면과 옷을 씌워 유사-구성원의 일원으로 전환하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며 겨우 몇 걸음씩 힘겹게 떼는 노견을 향한 인간적인 연민과 고통은 개-로봇-인간의 삼각관계 속에서 새로운 질감을 얻는다.
작업에 개를 전면에 등장시키기로 한 당시 작업 노트에서 권세정은 개를 방치하고는 뒤늦게 찾으러 가거나 죽어가는 개를 두고 발만 동동 구르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 개가 수행해 온 수많은 역할 가운데 가장 불쌍한 역만을 그에게 내어주고 있는 내 무의식이 참으로 빈곤하다”[1]고 고백한다. ‘애완동물’을 향한 인간중심적인 가여움과 막연한 슬픔을 쳐두고, 개가 그냥 개로 등장하고, 인간은 그저 담백하게 깨어 수 있는 꿈을 그리게 된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다시 말해 개를 비롯한 동물이 도시에서 인간과 얽혀 살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작성하여 온라인에 제된 “epilogue & prologue”[2]는 제목대로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만 2열 레이아웃으로 나란히 배치된 텍스트와 이미지로, 수억 년에 걸친 동물종의 진화에 대한 연구, 야생동물이 반려동물이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한 상상, 친밀한 사람이 공유하는 순간에 대한 묘사 등을 포함한다. 특히, 개가 인간과 더불어 살게 된 연유를 다룬 사변적인 이야기는 이후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도대체 누가 7마리의 매머드를 동시에 사냥할 수 있었을까” 하며 경계하지만 (인간을) “굳이 쫓아내지 않기로” 결정하고 허기를 채우는 들개 무리와 “인근을 맴도는 ‘D’의 존재도 평소와 달리 든든하다”며 들개 무리를 내버려두기로 하는 인간 부족의 입장을 교차하며, 인간과 개 사이의 상호 길들이기의 순간을 그려낸 것이다. “언어가 다르기에 일시적인 휴전인지 동맹인지 확실히 짚을 순 없었지만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 영역을 공유하기로 한다”는 무언의 잠정적 결론은 한편으로는 인간은 물론 동족에게조차 “매번 기싸움을 벌여 보는 이들을 무안하게” 하는 반려동물의 에피소드같이 소소한 차원에서 구현되기도 하고, 역사적 순간들을 함께 통과하며, 일방적인 의존이나 흡수가 아닌 긴장으로 충전된 공진화의 과정을 겪는 거시적인 차원의 서사로 연결되기도 한다.
러브 데스 도그: 역사의 굴곡 앞에 나란히 선 인간과 동물
이처럼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변과 지극히 사적인 경험, 공식적인 연구 결과와 직감에 의존하여 도달한 장면을 교차한 텍스트는 지난 4년간 지속해 온 ‘러브 데스 도그’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여러 갈래로 뻗어가 복수의 버전이 존재하는 영상과 전시 환경을 고려한 공간 설치 및 조각을 가로질러 확장되며, 권×권 고유의 방법론을 찾아가는 여정과 중첩된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긴장감을 놓지 않되 지극히 통속적인 정념과 사적인 기억을 붙잡는 태도는 단선적이고 목표지향적인 과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리서치와 통제를 벗어난 현장 촬영을 거듭하며 갈지자를 그린다.
2023년 YPC SPACE에서 열린 듀오로서의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러브 데스 도그 & 에필로그(프롤로그)〉(2023)[3]는 20세기 초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일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의 연구를 추적하며, 그 결과물인 유리 건판 사진을 살피며 시작된다. 이미지와 이에 대한 해설처럼 배치된 텍스트는 당시 식민 지배를 정당하기 위해 자행한 조선인 신체 계측 및 지역 풍습에 대한 기록을 건조하게 다룬다. 그런데 빛바랜 흔적 속, 마치 늘 거기 있었다는 듯, 개가 등장한다. 특히, 한국에 남아 있는, 개가 찍힌 가장 오래된 사진 중 하나이자 이 프로젝트의 강력한 동력이 된 ‘전남 해남 우수영의 진돗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속 개는 목줄 없이 한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식민지 조선에 관한 인류학 조사에서 이 개는 어쩌다 사진에 담기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당시 조선인이 처한 통제와 지배 논리가 우리와 함께 살아간 동물에게까지 적용된 역사를 추적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동등하게 낮은” 위치에 공존했던 상황의 윤곽을 밝힌다. 근대화에 대한 일제의 열망은 개를 철저한 관리 대상으로 삼는 단속 규칙으로 표현되었고, 식민지 조선에 대한 착취가 극에 달하던 1940년대에는 개가 군복에 쓰일 가죽으로 동원되기에 이른다. 당시 조선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대신 1903년 오사카 내국권업박람회와 1907년 도쿄권업박람회 당시 일본인 탐험대가 발굴한 유물 및 이국적 동식물 곁에 조선인이 함께 전시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일제강점기 및 근대사회로의 진입 역사 속 인간과 동물, 사물이 운명공동체였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본 영상에서 역사적 사실과 기록물을 꿰어 그린 작은 역사가 무색하게 에필로그는 누구도 대신 말할 수 없는 사적인 감각과 미지의 존재의 시점에서 사변한 과감한 비약을 제시하여 수렴되려는 목소리를 흩어놓는다. 바로 지금의 순간과 인류가 겨우 기억할까 말까 한 아득히 먼 시점이 뒤섞이고, 인간과 개와 늑대와 온갖 작은 생명의 걸음이 교차한다.
공적 서사를 가로질러 흐르는 맥박으로서의 개별적 서사 및 내밀한 정서는 《젊은모색》에서 선보인 버전의〈러브 데스 도그 & 에필로그〉(2025)에서 전면화된다. 지난 버전에서 주가 된 조선총독부의 연구 기록물 등 공적인 아카이브 외 영구적으로 보존될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증거물 및 그사이에 끼인 개인의 기록을 주로 파고든 것이다. 때문에 영상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불가피하게 상처 입고 얼룩진 개별 유리건판의 질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이미지와 텍스트 혹은 서사 사이 이격은 과감하게 벌어진다. 서사는 앞서 살펴본 박물관에 소장된 도리이 류조의 ‘공식’ 연구 자료 및 3인칭 서술 시점을 내려놓고, 작가가 수집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반(半)가상 인물인 조선인인 ‘K’의 여정을 추적한다. 제국대학에서 수학하고 군 위탁 연구에 투입되어 곰팡이 표본 채집을 하다 도쿄 공습의 소문에 부산 우암동 소재 우혁혈청제조소[4]으로 이직한 K의 경로에 거리에 버려진 가죽 구두나 옥수수 껍질 따위의 사물, 전국에서 이송되어 이출우검역소[5]를 거쳐 배편으로 일본에 동원된 수천 마리의 소, 소가 사라지자 생업을 잃고 개 살처분을 이행하는 백정, 해방 이후 빈 소막사에 살게 된 피란민까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관통하는 역사 속에서 인간 및 동물이 교차하여 등장한다. 이로써 동물과 인간의 이야기는 하나의 결정적인 역사적 언술이 아닌 연쇄적으로 맞물린 수많은 개별 서사로 분화된다. 이때 동물과 인간은 이러한 개인 혹은 개체가 통제할 수 없는 역사적 굴곡에 나란히, 함께 이리저리 떠밀린다.
특히, 근대화와 국가적 진보를 상징하는 기차는 식민 지배하의 모순과 수치심에 “한낮의 몽유병자처럼 헤매듯” 하는 인간 K와 철저히 자원으로써 동원된 소의 여정을 잇는—사람이나 소나 기차에 실려 보게 되는 풍경은 동일하다는 의미에서—매개 역할을 한다. 나아가 이 작업은 일정한 선로를 따르는 탈것인 기차를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는 채널로 삼는다. 권×권은 기차를 타고 한때 K와 검역받던 소가 머물던 부산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때 거대한 건물이었던 우암 소막사가 아예 사라졌거나 변형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년기를 보낸 피란민 2세가 마을 공동체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 애초에 사람이 살도록 짓지 않았던, 집들이 전부 엉성하게 붙어 있어 연결 부위마다 비가 새던 그곳에 대한 기억을 살려 우암동소막마을공동체 일원인 이희득이 제작한 모형이 현재의 막사 터에 포개져 등장하여 공인된 사료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제는 K도 소도 없고, 항만에는 컨테이너선이 유유히 자리를 지킬 뿐인 그곳에서 카메라는 모형 막사에 줌인하여 누군가 거칠지만 상세하게 표현된 내부로 들어간다. 12일간 매일 두 차례씩 체온 검사와 피검사를 했던 소, 그리고 정갈하게 신을 벗고 들어가 밥을 지어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종종 제사도 지냈던 사람들은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다.
조형 실천: 말하지 않기, 중간에서 만나기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도입한 권×권의 ‘러브 데스 도그’ 연작은 영상으로 유통되기를 염두에 두고 제작하여, 여러 영상제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전시에서는 영상과 나란히 놓인 조형과 더불어 이들이 드러내고자 했던 여러 갈래의 서사가 지닌 질감, 방대한 리서치와 수집에도 불구하고 결코 소진되지 않는 개별 존재들의 영역, 그리고 이로부터 도약하는 교차적인 상상력이 응집 조형 실천을 병행한다. 이는 조형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시각적, 사회문화적 덩어리들을 포착하고자 했던 권동현과 권세정 각각의 예술적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권동현은 개인전 《나의 아저씨》(별관, 서울, 2021)에서 공공장소에서 훌렁 배를 까놓고 다니거나 대중교통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등 거부감을 일으키는 남성의 모습들을 큰 좌대 한가득 빚어 올렸다. 이러한 조형적 접근은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거 것 없이 행동하는 남성들에 대한 본능적인 반감과 연민, 이러한 모습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조롱 섞인 재현과 확산, 나아가 설명하기 어려운 매혹과 동일시 및 자기혐오 등 일관성 있게 요약할 수 없는 작가의 시선을 한데 담는다. 한편, 권세정은 쇠약해진 노견 ‘밤새’의 몸을 본떠 매끈한 합성수지 조각으로 만들어왔다. 개인전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인사미술공간, 서울, 2019)에서 보여준 〈어깨-팔꿈치〉(2019)와 〈가슴-배〉(2019)는 제목 그대로 개의 몸통 중 일부를 따와 털과 가죽의 질감, 색, 그리고 동세 등을 제거하고 투명한 우레탄 덩어리로 압축하여 과격한 소거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집에 살고 있을 ‘강아지’ 혹은 ‘애완견’을 상기한다. 단, 이때 개는 ‘나’의 개가 아닌, 개를 길들인 우리 사회 속 익명의 집에 사는 익명의 개를 지시하는 동시에 보는 이마다 이에 얽힌 자신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이들은 각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천착한 조각을 건져 올려 그 형태와 부피감을 통해 무어라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복합적인 맥락과 정서를 집약하고, 나아가 중층적인 해석에 노출 것이다.
권×권의 첫 개인전에서는 굴곡진 스크린에 단채널로 구성한 ‘러브 데스 도그’ 버전을 영사하고, 그 반대편에 슬라이드 필름을 한 줄 배치했다. 멀리서는 마치 중요한 자료를 나열한 듯한 형태지만, 가까이 서야만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공적 아카이브로부터 길어 올린 영상의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사소한 순간들—개와 뒹굴고, 개와 밤 산책을 하고, 우연히 나비가 손에 날아든—을 담았다. 더불어 이 선반을 비롯한 전시장 곳곳에는 한 여자가 개를 끌어안거나 씨름하는 자세의 작은 점토 조각들이 놓여 있다(〈여자와 개, 개와 여자〉, 2022). 한편, 도로를 향해 있는 창문은 반쯤 열려 있고, 인류의 조상을 암시하듯 털이 풍성하지만 붉은 피부와 펑키한 손톱 장식은 오히려 먼 미래의 신인류를 고대하는 듯한 팔 하나가 연기를 내뿜는 파이프를 끼고 창틀에 걸쳐 있다(〈구경꾼〉, 2022). 곁에서 담배를 피우는 알만한 사람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줄곧 저 멀리를 내다보던 야생의 존재 그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존재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들의 배치는 구체적인 누군가의 일상부터 인류와 개의 공진화 역사를 가로지르는 사변의 자리다. 공적 기록과 사적 순간을 직관적으로 엮어내고,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과 다가올 미래 사이에 놓인 중간적 존재들을 대변하면서.
《젊은모색》에서 권×권은 기차를 형상화한 구조물을 세우고 그 가운데 스크린을 설치하여 양쪽에서 관객이 마주 보는 구도로 각 채널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주로 선형적인 여적(旅跡)을 그리는 기차를 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왕복하는 이동의 메타포로 제시하는 영상 작업에 호응하는 공간적 연출이다. 정교하게 구현한 소음 및 진동과 더불어 기차 내부에 있는 듯한 관객은 한 켠에 마치 차창처럼 린 구멍으로 풍경을, 즉 그 바깥에 설치된 좌대 위 조형물을 내다볼 수 있다. 그중〈개, 혹은 그와 연결된 형상들〉(2025)은 개, 혹은 적어도 판매자는 ‘개’라고 명시한 공예품을 수집한 것과 이를 왁스로 재현한 것 모음이다. 이들은 영상에 등장하는 작가 소장 유리 건판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에 소장되기에는 그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 완성도를 증명받지 못한 것이다. ‘실패’한 개들—개라기엔 용, 물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등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들— 은 왜 ‘개’라고 불린 걸까? 도대체 왜 만든 걸까? 익명의 누군가, 심지어 전문 공예가가 아닌 이들이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작고 어설픈 형상들은 어쩌면 권×권이 조각을 통해 하려던 것–자신의 세계에서부터 두드러진, 사적 정념으로 충전된 형태를 발췌하기–을 이미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권×권은 그렇다 생각하고 이 조각들이 응축한 시선과 마음을 읽어내고자 한다.
한편, 이전 개인전에서도 등장했던 여자와 개 조각은 이번에는 점토와 마찬가지로 유동적인 속성을 지닌 왁스로 제작되었다(〈여자와 개, 개와 여자〉, 2023-2025). 왁스는 경도가 높은 금속 조각을 위한 몰드를 만들 때 사용되는, 과정상 녹여 없애게 될 원형을 빚을 때 동원되곤 한다.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진지한’, 즉 작품의 ‘최종 버전’에는 부적합한 왁스는 오히려 모두가 아닌 어느 누구에게만 소중한, 세월을 거쳐 흠집이 가득 나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권×권에게 썩 적합한 재료다. 나아가 왁스는 융해와 응고를 반복해도 변질되지 않기에, 다사다난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끈질기게 우리와 함께 머문 통속적이고 정동적인 이미지와 상응한다. 이러한 유연성은 작가에게 무의식적이고 임의적인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데, 수집한 공예품에 왁스 복제물을 덧붙여 전혀 다른 자세와 얼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 손이 유실된 채 발견된 공예품의 원래 손짓을 상상해 왁스로 조각하고, 이를 황동으로 주조해 작품에 다시 이어 붙이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작은 조각들을 구경하는 사이 영상은, 낡은 기차는 달리고 달려 에필로그로, 현재로, 바닷가에 도달한다. 지금 시점에 이 이야기를 구성한 작가와 마치 현재로 소환된 듯한 ‘K’의 시선이 교차다. 바다와 모래사장을 거니는 누군가의 손이 모래를 모으고 구석구석 쓸어내어 ‘개’라고 읽히는 덩어리를 완성한다. 파도 몇 세례면 쓸려나갈 형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고 마는 손길은 같이 사는 개를 수도 없이 쓰다듬었을 손이자 생계를 위해 개를 려잡은 손이고, 흙으로부터 곰팡이를 채취한 손이자 근대국가의 부름으로 병든 짐승을 태운 손이며,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 벽을 세우고 천장을 수리한 손이자 이름 모를 아름다운 개를 어설프게 다시 만들어 고이 간직한 손일 테다.
아마도 권×권의 ‘러브 데스 도그’ 프로젝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거다. 공적인 기록과 사적인 흔적을 가로지르며 인간과 동물, 그리고 사물이 서로의 통제를 벗어나 포개지는 장면들을 뒤좇는 일이 마무리될 리 없으니 말이다. 다만, 버전을 거듭할수록 권×권이 각자의 실천을 넘어 현실 속 대상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와 사물과 관념 사이에 놓인 조각을 병행하는 실천적 언어가 밀도를 더해간다. 앞으로 더해갈 예상치 못한 만남의 발견과 손때 묻은 흔적의 발굴을 기대해 본다.
[1] 권세정의 비공개 작업 노트(2021) 중
[2] http://sasarounproject.com/ss/posts/seddy-kgwon
[3] 이에 앞서 단체전 《ADOPT ADAPT》(Hall 1, 2022. 유지원 기획)의 커미션으로 제작한 〈러브 데스 도그 시티〉(2022)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버전이다. 이 버전은 인간과 비인간의 중간 존재를 설정하고, AI 기술을 이용해 생성한 목소리의 내래이션으로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을 관통하며 인간과 반려동물, 나아가 야생 동물의 자리가 어떻게 겹쳐지거나 충돌했는지 추적했다. 수집한 사진 자료 등을 기반으로 한 역사의 단면과 더불어 반려견 ‘초롱’을 비롯해 새, 고양이, 벌레, 가죽과 목재, 기계가 공존하는 ‘경선’의 사업장과 여러 생물과 미생물을 배제하지 않는 자연 재배 농법을 지향하여 생산력에 타격을 감수해야 하는 ‘송희’의 밭을 통해 미시적 차원에서 비인간 존재와 공존이 불러오는 딜레마를 제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인위적으로 복원하고 이를 추적하거나 반려동물의 동거를 금지하거나 허가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영역을 구별짓는 양상을 다룬다. 여러 시공간을 가로지르되 이를 촘촘하게 연결하기보다 건너뛰는 방식으로 제시하여 끝내 길들여지지 않는 낯선 존재와 조우에서 발생하는 공포 혹은 숭고라는 근원적인 정서를 파고들었다.
[4] 소의 피를 이용해 우역 백신을 만들던 기관.
[5] 조선의 소를 모아 각종 검사를 진행한 뒤 일본으로 수출한 기관.
*《젊은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25) 연계출판물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