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AL SURVEY

한시적, 유희적, 자조적: 2010년대 신생공간이라는 망실된 정신을 소환하기

인미공 종료전시 《그런 공간》 전시 연계 출판물 ⟨열망들: 미술—공간은 무엇을 (원)하는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2025년 11월 발간
pp.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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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의 동인 김뺘뺘(유지원)는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플랫할까?(1)”¹를 게재했다. 2010년대에는 어느새 등장한 ‘플랫’이라는 단어가 특정 작품을 다룬 평문이나 현황 비평은 물론이고, 가벼운 대화 속에서도 다방면으로 사용되었다. 새로 도입된 표현이 그렇듯, ‘플랫’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입과 입을 가로질러 의미의 몸집을 불렸다. 어찌 됐든 남용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이 단어를 피해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일종의 시대정신을 포착한다는 직감을 갖게 됐다. 이 작품은 플랫해서 재미있고, 그 글은 플랫해서 별로이고, 모든 것이 플랫하여 흥미롭지만, 저것마저 플랫해져서 허탈했던 그때, 작업실로 쓰던 소박한 방이나 저렴한 월세로 나온 낡은 건물 등을 정비하여 자신은 물론 동료를 위해 개방한 미술 공간들이 ‘신생공간’²이라는 흐름으로 자의 및 타의로 규명되어 연결되었다. 중심 없이 산발적으로 전개된 현상에 근접하고자 했던 김뺘뺘의 텍스트는 미술사 및 문화비평을 가로질러 ‘플랫’이라는 표현의 계보를 살피고, 당시 팽배했던 분위기나 경향을 ‘서울–플랫’이라는 개념으로 정초하고자 시도했다. ‘플랫’은 근대적인 거대서사의 종말³과 함께 큰 의미 혹은 원칙이 사라져버린 공백을 움켜쥐고자 했던 임시방편으로 채택된 것이었는데, 한때 응집된 기운이 점차 다방면의 경향으로 흩어지는 사이 3부작으로 기획된 비평 프로젝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잠정 중단되었다.

물론 2010년대 미술계에 신생공간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신생공간은 마니페스토나 별도의 운영 주체 없이 산개한 개인에게 모종의 소속감을 부과하고 그 국면이 끝난 이후에는 어떤 시절이 저물었다는 감각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가공할 만한 운동성을 자랑한다. 당시 미술 현장의 공기는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과 이후가 이토록 강렬하게 체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플랫’했을 뿐인 것이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가? 하지만 입장을 바꾸면 질문은 달라진다. 신생공간에 대한 경험이 없는 이들은 어떠한가? 이들이 신생공간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신생공간을 경험한 이들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정서적 지반 혹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는가? 재현을 할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일련의 사건을 굳이 불러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글은 의도된 한시성,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감행한 유희, 그리고 잔잔하게 깔려 있는 자조적 태도를 중심으로 2010년대 신생공간을 돌아보며, 미완의 프로젝트를 다시 이어간다. 이는 임시값으로 잠시 올려두었던 단어 ‘플랫’을 통해 건져 올리고자 했던 망실된 정신을 소환하여 질문해본다. 당시에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욕망하고, 기대했나? 높은 해상도로 회상하긴 어렵고, 역사화 되기엔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구간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취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이 우리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구체적인 참조점을 나열하기보다 직관적으로 건너뛰거나 연결하고, 무형의 기운을 추출하여 응축하고, 그것을 ‘지금’의 땅에 풀어놓아 어디로 길을 내는지 관찰하고자 한다. 과격한 일반화와 객관성의 상실을 감수하는 작법을 택한 것⁴은 당시 신생공간의 목격자로서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던 나의 위치 탓이기도 하지만 이를 비가시적인 에너지 혹은 정신으로 파악할 때 현시점에 활성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다행히 이로부터 적절한 거리가 발생하여 미술사 및 이론 부문의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에 이 글은 그 위에 겹쳐 다채롭게 분산되는 빛깔을 추적할 수 있는 일종의 필름 정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시적 — 예고 없이 안녕! 하기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예술가 장터 《굿-즈》는 시작부터 딱 한 번만 있을 행사로 기획되었고, 이를 상징하듯 공식 굿즈는 그 자신의 묘비였다. 처음부터 예정된 한시성은 기습적으로 등장했다가 일언반구 예고 없이 문을 닫는 신생공간을 비롯한 자기조직적 움직임 전반에 이미 흐르는 기류였다. 이러한 지속성의 부재 혹은 일종의 유산 만들기에 대한 심드렁함은 이 움직임이 새로운 세대의 치기 어린 놀이로 취급받는 주요 혐의점이 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태도는 제도적 순환, 즉 매년 기금에 지원하고 그해의 살림을 살아내야 하는 책무를, 더불어 공간을 운영하는 상황이라면 부동산 계약이 갱신될 때 상승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버거웠으리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영구성의 포기는 현실적인 운영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효한 전략이다. 하지만 《굿-즈》의 단발성은 그 운영 조직—혹은 그것의 부재—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선택이었다. 36명의 운영진과 80명(팀)의 참여 작가는 단일한 목표 아래 모여든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욕망을 지닌 이들이 임의로 모인 일종의 TF팀에 가까웠으니 말이다.⁵ 지속될 수 있는 플랫폼을 기획했더라면, 그리하여 《굿-즈》라는 행사의 뚜렷한 방향성과 조직 구조, 역할과 수익 구조에 대한 합의에 이르러야 했다면, 이처럼 광범위한 참여를 도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굿-즈》의 한시성은 불가피한 조건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성립 조건으로 작동하여 이 사건에 시급성을 더했다. 미룰 수 있는 ‘이 다음’도, 연습 게임도 없다. 지금,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펼쳐야만 한다. 이렇게 《굿-즈》는 애초에 폭발적인 단 한 번의 사건이 될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 열렸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속되기 위한 공을 들이는 대신 적당한 때가 다가오면 알아서 소멸하는 신생공간의 한시성은 이전 세대의 성공 전략, 즉 주류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여 대안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이로써 영속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접근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잘 실패하는 전략은 기존의 수직 방향의 운동—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고, 마치 단단하게 굳어진 블랙박스처럼 이미 주어진 사회구조적 현실에—약간의 균열은 가능할지 몰라도—전혀 새로운 판을 제시하기는 힘들다는 자각을 갖게 된 소위 ‘성장 지연’ 세대에게 썩 적합한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수고스럽더라도 이 모든 노력이 모여 성장 혹은 더 큰 가치로 귀결될 거라는 신화에 대한 불신—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도 고생한다!—이 세대적으로 공유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차라리 옆으로 게걸음 하며 시간을 벌고, 위로부터 인정을 구하기보다 곁에 있는 동료와 연합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일 테다. 2008년 금융위기 즈음하여 극단적인 긴축 경제에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는 더욱이 선배들의 성공 사례는 물론이고 대안적인 길 또한 참조하는 것이 요원해 보였을 것이다. 앞서간 누군가를 따른다는 발상이 희미해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무언가를 남기고 물려주기 위해 준비한다는 감각 또한 옅어진다는 것—혹은 받은 적이 없으니 제대로 주는 법을 모르는 상태—을 뜻한다. 이로써 신생공간 움직임은 거시적인 인생 곡선이든 미술계라는 무형의 영역 내 간세대적 교류에서든 위아래가 없는, 즉 수평적인—‘플랫’한—구간을,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최대한으로 넓게 벌려 그 가능성을 소진한 실험이었다. 나아가 ‘이 다음’을 약속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정성의 저항으로 읽을 여지가 있으며, 과거로부터 받지 않고 미래에 남기지 않는 ‘지금 당장’의 분주한 흥겨움은 과연 저출산 추세가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시대의 수순이었다고 볼 공산도 있겠다.

한편, 2010년대 이후 신생공간이 소비된 방식은 《굿-즈》를 비롯한 신생공간의 한시성이 단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켜져야 하는 가치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생공간(들)은 당대의 징후적인 태도를 느슨하게 공유했을 뿐이지 실상은 이 글에서처럼 하나의 고유명사로 묶기 민망한 산발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중반부터, 특히 《굿-즈》가 폭발적인 가시성을 발휘하면서 신생공간은 일종의 단일한 운동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요 미술 월간지에 특집 기사로 다뤄질 뿐만 아니라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있는 예술 플랫폼”에 주목한 《서울 바벨》이 개최되면서 신생공간은 단지 변방의 움직임이 아닌 가공할 만한 세력의 일종으로 부상한다. 한때 신생공간에서의 ‘전시’는 미완성의 시도를 부담 없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작동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력에 한 줄 추가할 수 있는 활동으로 변모한다. 심지어 직후에 등장하여 전반적인 맥락을 인지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신생공간이 한 번쯤 전시를 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준(準) 기관과 같은 것으로 오인될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생공간을 한 번쯤은 운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정은 그 힘이라는 것이 소셜미디어의 상용화를 필두로 하여 주의력을 자본 삼아 굴러가는 관심 경제의 논리와 맞물려 실질적인 권력과 일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모두가 신생공간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그 운영 주체가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나 경제적 입지의 개선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대안적인 오인을 거쳐 욕망의 대상이 된다. 배우 류승수가 라디오스타에서 발언한 후 밈이 된 가장 이상적인 삶—“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2019)—의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신생공간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그것의 예견된 휘발은 어쩌면 제도-되지-않기 실천의 일종이었을까? 신생공간의 잔존은, ‘대안공간’이 어느 시점부터 미술 현장의 중핵이자 준 기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 이상 ‘대안적’으로 인식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 그대로 이름에서 ‘신생’을 떼어내고 치명적인 형용모순을 피해 가야 가능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신생공간을 지속하라는 요청—단골 관객의 아쉬운 바람이든 한시성을 한심하게 보는 이들의 시선이든—은 창작자들에게 영원히 ‘젊은’ 작가로 머물라는 무언의 강권과 동의어일지 모른다. 젊은 창작자로서 기성 체제와는 ‘다른’ 무언가를 펼쳐야 한다는, 그러니 ‘제도권에 흡수되어’ 작업의 규모를 키우고, 멀끔한 갤러리 공간에서 전시를 하고, 이로써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등의 열망은 지연시키라는, 그리하여 최대한 오래—과연 몇 살까지 ‘젊은’ 작가일까?—미술 현장에 건강한 자극이 되어달라는 바람 내지는 압박 말이다. 그러니 신생공간을 굳이 지켜야 할 궁극의 가치가 아니라 때가 되면 놓아줄 수 있는 무언가로 취급했던 태도는 주요 플레이어들에게 그다음 무언가로 넘어갈 수 있는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이기도 했다. “너 변했다”는 말은 잔인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들어야만 하는 말이니까. 어쩌면 그보다 “넌 한결 같다”는 말이 오히려 모욕적으로 들릴 때가 있는 법이니까.

무언가가 명징하게 잔여한다는 것은 힘의 작동을 암시한다. 제도적 승인과 관리를 경유하여 공식 아카이브 혹은 역사적 서술로 동결되거나—힘이 있기 때문에 남았다—따라야 할 일종의 블루프린트가 되어버리는—남았기 때문에 힘이 있다—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생공간은 자의든 타의든, 혹은 자의와 타의가 협력을 이루어, 증발해 버렸다. 이로써 발생한 공백이야말로 이 글을 포함한 후일담과 사후 시점에서의 강령술이 가능했다. 부재로써 발동하는 힘은 어쩌면 신생공간이 후세대에 남긴 가장 강력한 축복이자 저주일지 모른다.

유희적 — “하지만 행복하다면 OK입니다!”

1980년대생 창작자는 때때로 불건전한 취미 취급을 받던 엔터테인먼트 장르들을 자신의 ‘본게임’인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기 시작한다. 보드게임 형식을 차용한 김영수, 2D 애니메이션을 입체 모형으로 만든 피규어의 형태로 조각을 재해석한 돈선필, 컴퓨터 게임이 재배치한 지각 경험을 탐구한 강정석 등 개별 작가의 작업에서 ‘진지한’ 미술 실천과 하위 문화 및 이를 소비하는 일상의 경계가 지워지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신생공간 현상은 개별 작업을 넘어 신생공간 현상 자체가 일종의 게임으로 펼쳐졌다.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 속 지형지물과 더불어 진행되는 게임 ‘포켓몬 고’가 출시되기도 전부터 신생공간은 지도 애플리케이션 및 소셜미디어가 실존하는 몸과 연동되어 실시간으로 ‘플레이’되었다.

주요 국공립 미술관 및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안국역 부근이나 강남 지역 일부에 갤러리가 밀집되어 있던 기존 미술계의 지리적 배치와 대조적으로 신생공간은 서울 전역에 펼쳐져 있었다. 황학동 시장이나 을지로의 좁은 골목, 상봉동이나 창신동을 비롯한 주거 지역 등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곳에 미술 공간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전시 소식을 접하고 무리 없이 찾아갈 수 있게 된 연결망 덕분이었다. 더불어 과거에 주요 미술 월간지나 ‘네오룩’ 등 비용을 치르고 광고 매체를 활용하거나 실물 홍보물을 제작, 발송하는 운동은 되지 못했/않았지만 다른 방향의 열망이 주조되는 가마로서의 신생공간은 이렇게 투사와 방식의 전략은 무료로 소셜미디어 계정을 개설하고 포스팅 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계정을 직접 팔로우하거나 찾아봐야 알 수 있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에게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촘촘한 연결망에 떠다니는 파편적인 정보를 마치 자신을 향한 호명 혹은 구체적인 목표 지점으로 인식했다. 이에 동선을 짜서 서울 곳곳에 산개한 미술 공간을 돌아보고, 근처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짤막한 감상평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고, 리트윗이나 ‘좋아요’ 등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행동 양식이 탄생했다. 마치 게임 속 임무를 수행하는 듯한 일련의 행위는 실질적인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이를 재미있는 놀이로 받아들인 플레이어를 확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이러한 유희의 양식은 초창기에는 신생공간의 가능 조건 정도로 작동했으나, 이후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판을 짜는 데 활용됐다. 《굿-즈》 이후 서로 다른 매체나 방향성에 따라 몇몇 판매 플랫폼이 분화되었는데, 신생공간-플레이어의 존재와 이들이 함께 모였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폭발적 에너지를 확인한 이들은 게임의 규칙을 정교하게 설정하고, 그 판 위에 참여자의 자유도를 높이는 방식을 취했다. ‘포스트 굿-즈’ 판매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더 스크랩》과 《퍼폼》이 2016년, 《취미관》과 《PACK》이 2017년에 출범했는데, 이들의 정체성은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인터페이스에 있었다. 이에 각자 몇 해 동안 거듭하는 동안 참여 작가 및 운영의 세부 사항이 조율되었으나 큰 골자를 유지하면서 참여 작가 목록이 다변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마포구 소재 미술 공간 취미가(2016-2021)의 《취미관》과 문래동 소재 공간사일삼(2009-2022)의 《PACK》은 펼치고자 하는 장(場)을 작품을 디스플레이할 뿐만 아니라 공간을 특정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는 물리적인 장(欌)으로 구현했다. 한편, 《더 스크랩》은 당시 사진을 선보이고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 부재하다는 점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1,000여 장의 사진을 A4 용지 크기로 규격화하고 데이터 크기 순으로 나열된 사진을 골라 일련번호를 적어 제출하면 매끈하게 포장하여 건네주는, 경험자에게 쾌감을 선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퍼폼》은 시간 기반 예술 작품을 극장 기반의 공연과 달리 릴레이로 선보였고, 탈영역우정국과 일민미술관 등 여러 장소를 거쳐 여러 형식 실험을 거듭하는 가운데 비물질적인 작품을 담을 수 있는 단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단일한 저자성으로부터 도출된 주제가 없는 이러한 시도들은 일종의 집단적 놀이를 창출하며, 설명하기 어려운 에너지를 공유한 집단을 만들어낸다. 별다른 접점이 없더라도 이 사건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집단적인 경험과 감정을 갖게 한 것이야말로 신생공간-플레이의 독특한 작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임 설계에 가까운 기획 모델은—세부적인 적용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겠지만—근본적으로 참여자를 선별하지 않는다. 실제로 《굿-즈》와 포스트 굿-즈 플랫폼들의 기획 주체는 때로는 개인이 아닌 크고 작은 집단이며, 참여 작가 목록은 촘촘하게 구성한 기획전이었다면 함께 보기 힘들었을 이질적인 창작자의 이름을 한 줄에 불러 모았다. 구조상으로는 누구든 출품, 판매, 심지어 운영 등 과정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 게임은 각 요소를 ‘평등’하게 배치하고, 참여자의 자유도를 높이는 데 특화되어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창작자는 주어진 영역—《취미관》과 《PACK》의 장, 《더 스크랩》의 규격, 《퍼폼》이 제시한 러닝 타임—안에서 자신의 몫을 스스로 결정했고, 평평하게 펼쳐진 현장에서 다종다양한 작품 사이를 연결하거나 선택(구매)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유희성을 가능하게 했던 게임과의 친연성은 이러한 모델의 한계로 작동하기도 했다. 게임 모델이 경쟁과 적절한 리워드라는 본연의 구성 요소로 환원된다면, 먹는 시장으로 변질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유희로서의 신생공간-놀이는 제한된 판에서만 가까스로 작동할 뿐, 그 안전한 영역으로부터 조금만 미끄러져도 그 유희적 성격을 상실하고 무한 경쟁 체제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혹은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창작자의 자발적인 기획으로 열린 판매 플랫폼은 지속 가능성—더 정확히는 반복 가능성—의 구조적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인 안정적인 수익 모델 창출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관객-플레이어가 자본력을 지닌 컬렉터라기보다 자신의 동료 혹은 이제 막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한 이들이었다는 점을 의식한 듯 판매 작품 및 물품의 가격대가 대체로 소박한 수준으로 책정되었고, 출품한 작가에게 유리하도록 수수료를 적게 책정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참여자와 함께 하든 진행이 가능하도록 플랫폼의 물리적 환경 및 소프트웨어를 갖추었다고는 하나 결국 운영진의 상당한 노동이 투입되어 결국 본전을 겨우 건지는 《굿-즈》의 결과를 반복했다. 심지어 고심하여 설정한 플랫폼 운영 방식이 이후에 수익성 사업을 도모한 주체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도용 당하거나 주요 참조점으로 이용당하는 일까지 겪게 된다. 이러한 ‘실패’가 수익 창출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구현할 방법을 몰랐던 것인지는 알아내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포스트-굿즈 플랫폼은 재미를 택한 셈이었다.

자조적 — 가던 길을 가는 방법

신생공간을 하나의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형상을 그릴 수 있을까? 여러 얼굴들이 스쳐 가지만, 이들을 추상화한다면 생기와 열정으로 뭉쳐진 덩어리보다 어쩐지 어색하고 경계심 어린 얼굴에 한숨과 푸념을 날숨처럼 흘리는 존재가 떠오른다. 신생공간은 이 활동에 목숨을 건 이들이 아닌 ‘탈미술’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어김없이 온갖 일을 벌이고 다니거나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냐며 울분을 토하면서도 시키지 않은 짓을 열심히도 하는 인물들이 만들어 낸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이처럼 공유된 모토로서 습관성 자조는 어쩌면 당시 이들의 현실 인식과 그로부터 길어낸 이율배반을 소화하는 방어 기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규모가 어떻든 신생공간의 운영자는 다양한 역할—부동산 계약과 물리적인 공간 정비, 기금 지원 및 집행, 회계 처리, 전시 기획과 설치, 디자인과 홍보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해야 했기에 불가피하게 미술 현장의 적극적인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더불어 서울에서 물리적인 공간과 무형의 연결들을 유지하기 위한 자원을 모색하는 일은 미술 제도의 작동 방식은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를 굴러가게 하는 힘을 의식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이에 따라 신생공간의 운영자 및 이에 연루된 이들은 서울에서 미술 활동을 지탱하는 조건을 살피고,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미술가는 어떤 존재인지를 인지한 지평에서 한시적이고도 유희적인 유예공간을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2010년대는 2013년에 결성되어 미술계의 노동 환경 및 처우를 본격적으로 논의, 공론화한 ‘미술생산자모임’을 필두로 젊은 세대가 노동자로서의 미술가의 위치를 직면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20-30대 젊은 창작자 및 매개자는 ‘신생공간’라는 테제로 흡수되어 논의되곤 하지만 미술계의 곳곳—크고 작은 국공립 미술관이나 비영리 단체, 상업 갤러리, 작가 스튜디오 등—에서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거나 온갖 잡무나 일용직을 겸하는 생활인이기도 했다. 미술계 내 무급 혹은 저임금 노동의 현실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를 다루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담론화하게 된 시기와 신생공간 흐름이 그리하여 이러한 플랫폼이 일종의 창작자의 뽐내기 경쟁이 되어버리거나 공동의 파이를 나눠 전개된 시점은 포개진다. 시민으로서 생계가 가능한 임금 수준에 대한 요구와 창작자로서 작품활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에 대한 공론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대의명분—예술을 위해, 심지어 ‘대안적인’ 예술을 위해—에 개인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집단우선주의의 한계를 좌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혹은 “이런 식으로는 작업 못 하겠다”는 심각한 내용의 탄식이 안부 인사처럼 교환되던 장면은 예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 및 협업의 지평을 서로 확인하고자 하는 대화법이었을 테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유연하고 가벼워 보일지 모르는 당시 현장의 이면에는 서로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으며, 무엇은 제공할 수 없는지를 투명하게 소통하는 과정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유희성, 즉 함께 놀 수 있는 판의 룰을 설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의뭉스럽게 시작되어 사례비를 논의할 때는 더욱 모호해지는 관례적 소통을 탈피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신생공간은 때때로 제도적 범주 바깥에 자리 잡은 것처럼 다뤄지곤 하지만 실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과 활발하게 교차, 중첩되며 전개되었다. 그 어떤 해외 도시와 견주어도 압도적인 규모의 대한민국/서울의 지원금은 공공기금이 시장 경제에 편입되지 않은/못한 예술 실천도 얼마간 생존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현장이 형성될 수 있었던 주요 촉매 중 하나다. 이로써 펼쳐진 미술 현장에서 제도라는 것이 명확하게 규명 가능한 범위라기보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기반에 속속들이 뻗어있다면, 그것은 거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오히려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곤 했는데, 일례로 《굿-즈》는 2015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작가 미술 장터 개설 지원’ 사업의 수혜를 받았으며, 여러 신생공간에게 공간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의 기금에 지원하는 일은 그저 김장철처럼 으레 매년 돌아오는 과업이었다. 하지만 기금의 선정 및 집행 과정의 특성상 예술가는 동시에 시민의 세금을 받아 먹는 ‘수혜자’인 동시에 국가 혹은 시의 정책에 대한 ‘집행자’가 된다. 예술 활동 증진을 비롯한 국가 사업의 취지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실행 방식 및 예산을 촘촘하게 세워 허가를 받고, 이를 오차 없이 정확하게 실행해 내는 사이 수혜자는 일종의 도급업체로 거듭나고, 기금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 혹은 경제가 창출된다. 당시 개별 행위자들이 제도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동료들 간의 ‘평평한’, 즉 수평적 연결들이 제도적 영역 혹은 수혜를 절대적인 것으로 수용하기보다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목적이라기보다 사용하기에 따라 유용한 수단으로 취급했던 것은 분명하다. 단, 기금-생태계가 서울 미술 현장에 뿌리내리고 창작자들이 이에 적응하여 진화하면서 본연의 목적을 위해 공공 재원을 활용하기보다 처음부터 프로젝트가 공공 재원의 요구사항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구상되는 등의 본말전도가 두드러지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적 맥락에 대한 자각에 더해 신생공간이 그 바깥을 찾지 못했다는 점, 다시 말해 신생공간의 관객층이 결국 신생공간의 운영자나 참여 작가, 비평적 관객 한 줌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앞서 다룬) 유희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앞서 다룬) 한시성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척하면 척인 ‘우리’와 함께라면 무얼 해도 대단히 재미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넘어 확장되지 못했을 때 이러한 시도의 유효성은 시험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관객/소비자층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바통을 이어받을 후세대를 기다리는 마음은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지금을 기점으로 돌이켜보건대 신생공간의 행위자는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대체로 비장애인, 한국인이며 서울 거주민, 미술이나 인접 학문을 전공한 20 30대였다는 점에서) 꽤 동질적인 집단이었다.

그 이후 많은 자조적인 미술인이 현장을 떠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들이 자조적이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미술 현장과 사회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힘과 그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생생한 자각 속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려면 끊임없이 툴툴거리는 수밖에는 없나보다. 자신의 활동과 이를 둘러싼 현장에 대한 뼈아픈 회의와 자기비하적 농담은 어쩌면 널리 공유된 기도문의 일종으로, 중층적인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길이었을 수도 있겠다.

지금, 다른 욕망을 조직하기

2010년대 신생공간의 정신을 소환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움직임의 동력인 동시에 그 소멸의 근간이 된 모순적인 속성—한시적, 유희적, 자조적—은 2020년대에 들어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2022년 서울에 등장한 국제적인 아트 페어 ‘프리즈’와 이를 중심에 둔 9월 첫 주의 서울아트위크는 미술 현장의 강력한 중력으로 작동하며 규모와 성격을 막론하고 미술 공간 전반의 연간 계획을 좌지우지 한다. 팬데믹 이후 본격화된 과잉 유동성의 국면에서 10여 년 전에는 폐기된 것만 같았던 수직적 성장 경로—맙소사,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가 다시 열린 듯하고, 케이팝과 영화 산업을 필두로 한 한국 문화 전반에 집중된 관심으로 인해 한국 미술도 덩달아 세계의 중심이 된 듯한 신기루가 펼쳐지고 말았다. 이 꿈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정신 차리고 본 게임에서 성과를 올려야 바람직할 것이고, 모처럼 국제적인 주목을 누리고 있는 이 현장이 자랑스럽다. 영구성에 대한 열망, 사뭇 진지하고 철저히 현실적인 태도, 그리고 불안이 서렸을지언정 은은하게 융기하는 자긍심까지, 이 시점의 공기는 마치 신생공간의 시대정신을 반전한 듯한 양상이다.

이와 같은 급속한 전환의 맥락에서 앞서 상술한 2010년대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시공이었다. 실행 예산이 10배 이상 차이 나는 전시들이 우열을 겨뤄 (한 줌의 사람들 사이에서) 없는 쪽이 훨씬 더 ‘유효한’ 시도로 회자되거나 유수 재단의 공모전과 냉난방도 채 되지 않는 공간의 오픈콜 중 후자를 선택하고 싶은 욕망이 앞서는가 하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월간지의 리뷰보다 익명의 블로거가 올린 파편적인 감상이 창작자에게 더 큰 힘이 되는, 논리적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곳에서는 일시적으로나마 여러 힘의 관계가 재편되고, 기이한 열망이 발현되었다. 당시 플레이어들은 구체적으로 와닿는 지점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이름의 위상이나 규모의 스펙터클만으로는 쉬이 매혹되지 않았고, 오히려 도시 곳곳을 기꺼이 쏘다니며 저마다의 지도를 그려 나갔다.⁶ 미술 현장에서 거대 자본과 공적 재원이 과잉 대표되어 그 바깥을 상상하기 어려울 때, 신생공간이라는 망실된 정신은 이러한 힘들의 배치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마크 피셔가 가속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가능한 체제로 인식되고 이외의 가능성은 상상조차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듯,⁷ 동시대 미술 시스템이 자본과 공권력을 중심으로 날로 보수화되는 현황 속에서는 공인된 권력 외의 주체 혹은 ‘플레이어’의 상은 점차 희미해지고, 손에 잡히는 보상 없이 공력을 낭비하는 일은 찾아보기 드물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생공간의 정신—한시적인, 유희적인, 자조적인—을 소환하는 것은 그것이 직격타를 날리는 대안의 로드맵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욕망을 생산해 냈기 때문이다. 기존 시스템의 인준을 거부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냉철한 성찰과 놀이를 병행하는, 서로 착취하지 않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불가능에 가까운—그리하여 당시에도 매번 실패를 마주해야 했던—장면들. 그것은 주어진 판에서 최고의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아닌, 주어진 맵을 임의로 리깅(rigging)하여 전혀 다른 게임을 할 수 있는 틈을 확보해 줄지 모른다.

  1. https://yellowpenclub.com/2015-2021/2017/10/09/flatness1/.

  2. 이 글에서 수차례 언급하는 ‘신생공간’은 2010년대 창작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비영리 미술 공간 및 이를 둘러싼 현상을 느슨하게 지칭한다. 당시 각 공간은 운영자의 출신과 출범의 계기, 구체적인 활동 및 전략이 각기 달랐으며, 서로 명시적인 연대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헐겁게나마 건져 올릴 수 있는 공통분모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신생공간을 구체적인 방향성을 지닌 ‘운동’보다는 ‘움직임’ 혹은 ‘현상’으로 주목한다.

  3. 신생공간의 맥락에서 소실된 거대서사란 청년을 위한 성장 매뉴얼 혹은 일종의 생애주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과 더불어 온라인 공간이 팽창하고 이미지 및 정보가 교환되는 양식이 대대적인 전환을 겪으며 깊이 혹은 배후의 의미의 부재가 부각된 것으로 맥락 지을 수 있겠다.

  4. 이러한 비약적 회고는 개인 소장 중인 물품을 경유하여 2010년대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일인칭 시점에서 더듬은 단행본 『미술 사는 이야기』(서울: 마티, 2024)의 연장선에 있다.

  5. 《굿-즈》의 공식 홈페이지(http://goods2015.com/)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운영진 및 참여 작가의 목록은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건대 이들이 얼마나 이질적인 집단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웹사이트는 행사가 종료된 지 10년이 넘어간 이후에도 운영진 중 한 명이 도메인 비용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시점(2025년 6월)에는 살아있지만, 언제 예고 없이 폐쇄될지 장담할 수 없다.

  6. 이 지도에서 소멸로써 이 글의 계기가 된 인사미술공간은 공신력 있는 제도권 공간, 신생공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장소, 혹은 이 둘의 교차점을 왕복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인사미술공간은 다양한 출판의 시도 및 신진 예술가의 실험을 지원한 기관으로서의 정체성과 유산을 유지하되, 이동형 스크리닝 ‘비디오릴레이 탄산’의 두 번째 행사에 자리를 내어주고, 대표적인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워크숍으로부터 파생되었음에도 당시 신생공간의 속성들이 묻어 있는 달리 주제라 할 것 없이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 받는 장면을 펼친 그룹전 《실키 네이비 스킨》(2016)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었다.

  7. 마크 피셔,『자본주의 리얼리즘 – 대안은 없는』, 박진철 옮김 (서울: 리시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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