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hee Kim:
Hide Edges

10 October - 2 November, 2025
YPC SPCE, Seoul

주최 주관: YPC SPACE
기획: 유지원
설계: 송준태, 최유정
테크니션: 송준태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창밖을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아직 창문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가 실은 도면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다시, 창밖을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입체 도면 툴인 스케치업에서 ‘가장자리 제거’를 설정하면, 면과 면을 구분하던 검은 선들이 사라지고 표면만 남는다. 이 선들은 구조를 확인하고 편집할 때 유용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자리는 설계와 시뮬레이션 사이의 문턱과 같다. 바로 이 면과 면 사이 경계가 지워지는 순간, 화면 속 구조물은 완성된 건물이 된다. 지난 수년간 전시 공간과 전시 공간이 아닌 곳, 우휴 공간과 상업적 공간을 가로지르며 공간 설계 및 시공을 진행해온 김동희에게 도면은 다가올 건축의 전조가 아니라 이미 구축이 완료되는 발화점이다. 그간 작가 혹은 협업자로서, 공간 디자이너 혹은 작가로서 그려온 수많은 도면들은, 모종의 이유로  물리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경우에도, 도면을 치는 순간 이미 지어진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구조물은  전시가 끝나면 적절히 썰려 파편만 보관되거나 아예 철거되지만 김동희의 작품의 원형은 물리적 건축물이 아닌 스케치업 파일에 있으므로, 작품은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된다. 그러므로 그것의 이름을 부르면, 여지 없이 온전하게 뷰어에 다시 등장한다. 심지어는 몇 개의 이름을 동시에 불러 겹쳐볼 수도 있겠다. 서로 다른 조건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요소들이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감상하거나 하나의 레이어가 다른 레이어를 어떻게 절단내는지를 관찰하며 새로운 모양을 발견하는 작업은 무한한 경우의 수를 품고 있다. 

《Hide Edges》는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옥상에 구현한 〈도킹즈〉를 기반으로 한다. 김동희는 〈도킹즈〉의 스케치업 파일에 YPC SPACE를 동일한 비율로 내려놓고, YPC SPACE에 열어둔 창문의 수 및 크기와 동일한 가상의 창문을 설정하여 그로부터 무엇이 보이는지를 관찰했다. “창과 창을 통해 보이는 것 사이의 미세한 시점을 살피고, 시야의 각도를 조절하여 최적의 장면을 추출”한 뒤, 그 장면을 목재, 철판, 하이그로시 표면 등 다양한 자재를 동원하여 부조로 구현했다. 벽면에 부착된 네 점의 평면은 도면과 건축물과 독립적인 작품의 층위를 관통하며, 특정한 시점(視點)을 동결시킨다. 이 창문들은 충무로 소재의 전시장을 돌연 폭 18미터, 길이 66미터의 옥상 위에 얹어놓는다.   

한편, 〈도킹즈〉가 이번 전시의 단일한 출발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또한 이전 작업 데이터 및 물리적인 파편들을 발췌, 재제작한 것이다. 등장하는 구조물은 다음을 포함한다: 《데코·데코 Décor·Décor: 리빙룸 아케이드》(일민미술관, 서울, 2022) 2층 시공을 위해 적채해둔 조립식 가벽, 버려진 공간을 전유하여 개방한 프로젝트 〈나열된 계층의 집〉(2014) 당시 조성한 무대의 모눈종이 패턴과 파쇄석이 깔린 바닥의 질감, 《다른 곳》(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20)에 출품한 〈시퀀스 타입: 3〉의 파츠 등. 이들은 이미 여러 차례 구축·해체·복각을 거치며 ‘원본’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2010년대 초부터 주어진 환경에 개입하여 어떤 사건이 일어날만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해오면서 축적된 데이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 참조적 방법론에 안정적인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그의 궤적은 나아가 공간이란 살균된 흰 바탕이 아니라 누군가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해 온 흔적의 집적이라는 점과 공간을 만드는 일은 그 위에 임시로, 그리고 임의로 시뮬레이션 파일을 불러오기하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창문-부조는 이러한 그의 도면적 사고를 집악적으로 제시하며, 연쇄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재귀적 방법론의 시작을 알린다. 

빌 마틴 주니어의 동화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얼 보고 있니”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얼 보고 있니? 빨간 새가 나를 보는 걸 보고 있어. 빨간 새야 빨간 새야 무얼 보고 있니? 노란 오리가 나를 보는 걸 보고 있어. 노란 오리야, 노란 오리야 무얼 보고 있니... 말미에 화자는 아이들에게 무얼 보고 있는지 묻고, 아이들은 갈색 곰과 빨간 새와 노란 오리와 파란 말과 초록 개구리와 보라색 고양이와 흰 개와 검은 양과 금붕어와 선생님이 우릴 보는 걸 보고 있다고 답한다. 이곳에는 김동희가 지난 수년의 도면 데이터를 가로지르며 발췌, 중첩한 공간을 내다보는 직사각형 외 또 다른 창문이 있다. 도로를 향해 열려 있는, 꽤 높이 자라난 소나무와 전봇대와 들쭉날쭉한 건물을 단숨에 썰어 버리는 창. 바깥 공간으로 열린 이 시야는 이 다음에 펼쳐질 장면에 되먹일 데이터를 제공한다. 

‘가장자리’를 지우면 그 사이에 무엇이 베어나올까? 도면이 잠재적 설계도가 아니라 실재적인 구조체이며, 물리적 구현물은 그 도면의 일시적 출력이라면, ‘가장자리 제거’는 실제 창문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과 여과 장치로서의 창문으로 서로 다른 환경적 요소와 여러 시간적 층위를 집적하는 일을 통합하는 작업일테다. 그러니 다시, 창밖을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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