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집이라면,
향수병은 다름 아닌 멀미
14-27 September, 2023
Woosuk Gallery,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서제민, 조수민, gxu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일상적인 통근부터 과감한 결단이나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한 이주까지, 이동은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강력한 변수이자 이 세계를 조형하는 힘이다. 크고 작은 이동 가운데 개개인은 저마다 익숙한 장소가 확대되거나 불편한 길은 좁게 그려진 왜곡된 지도를 그리고, 또 고쳐 그린다. 단 하나의 고향 혹은 단일한 거점을 누릴 수 없게 된 이 시대의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짙은 향수병을 경험한다. 산업화 시대에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가 시달렸던 향수병은 당시 범죄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하는 병폐로 인식되었다. 가속화된 발전으로 인해 힘차게 펼쳐지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노스탈지아는 분명 현대사회의 부작용이다. 그리워할 대상을 규명하지 못한 채 지향성에 시달리는 동시대 인간은 한편 마침내 정주의 상태에 도달하면 마치 긴 항해를 마치고 오랜만에 땅을 밟은 선원 마냥 땅 멀미에 앓는다. 한 곳에 사는 것은 지루하고, 발전적이지 못하므로,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막연한 압박이 스며든다. 이처럼 향수병과 멀미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가운데 새로움과 낡음, 도전과 익숙함에 대한 비등한 충동은 소용돌이를 자아낸다. 우리는 모두 갈지자로 이동한다.
《바다가 집이라면 향수병은 다름 아닌 멀미》는 서제만, 조수민, gxu과 상시 이동이 삶의 양식이 된 오늘날 현실과 이로부터 전개되는 적응-정착하고자 하는 본능과 떠나고자 하는 충동을 살펴본다. gxu는 여러 작업에 걸쳐 별을 만들거나 그렸다. 별은 과거 시간과 방향을 읽기 위해 활용된 한편 여섯 획으로 만든 별 그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별’을 뜻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부표로 작동한다. 〈무제(나고야)〉(2023)는 일본 나고야의 한 숙소에서 치실로 그린 별의 풍경을 담는다. 창작의 자극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낯선 공간에 가두고, 그곳에 잠시나마 적응하고 잠을 청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도출된 행위는 결국 별을 그리고, 보는 일이다. 사적이면서도 수많은 익명의 사람과 공유하는, 낯설지만 동시에 지역색이 부단히 지워진 호텔 방에서 벌이는 별 보기는 임시 점거와 적응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생활을 은유하는 동시에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이 그려지는 이 전시를 보는 방법을 예시한다. 이와 더불어 전시장 가운데 놓인 낚싯대와 벽에 기댄 캔버스는 바닥이나 벽에 절대적으로 고정되기보다 부유하는 상태로 연출된다.
조수민은 주어진 공간을 청소하거나 보수함으로써 장소와 주체가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2020년에 시작된 ‘Home’ 연작은 얼마간 해외 생활 후 귀국하여 마주한 낯선 집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집을 비운 사이 가족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생전 처음 본 공간에 던져졌을 뿐만 아니라 곧장 들이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그곳에 고립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조건 및 몸과 마음의 노동을 탐색하게 된다. 이 연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의 일부를 깨끗이 닦아내어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중심으로 삼는다. 이러한 음의 노동(negative labor)은 나만의 영역을 일구는 하나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부러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인식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태도를 보여준다. 나아가 일련의 증거 이미지는 감각을 보다 섬세하게 가다듬어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청소 노동을 비롯하여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노력을 우리 사회가 높이 사는 ‘발전적’ 변화만큼이나 돌출된 행위로 인식할 것을 제안한다.
서제만은 타국에서 생활하며 어떤 장소에 속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영상 〈여기의 물〉(2019)은 낯선 존재를 은유하는 괴물 형상의 가면을 쓰고, 그의 시선을 통해 타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출신지와 무관하게 식물이 한 곳의 물을 먹고 자란다면 그곳에 속하지만, 왜 인간은 그곳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지내더라도 그곳의 사람이 될 수 없는가? 〈대체물〉(2019)은 허공을 떠다니는 타자의 시선을 빌려 먼 길을 이동하여 타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동시에 작은 제스처로 자신의 자리를 주장한다. 오래된 건물 계단참에 마치 터줏대감처럼 나란히 놓여 있던 화분 중 하나가 사라지자, 화자는 그 자리에 이를 대체하는 사물을 놓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이동에는 지난한 과정의 적응이 따르지만, 서제만의 드로잉은 한편 자유롭고 힘 있는 구성으로 이동의 감각이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 작가의 작업은 뚜렷한 구별 없이 한 공간을 동시에 점유한다. 머지않아 이들은 이곳을 떠날 것이다. 약속된 기간만큼 펼쳐지는 한시적인 공존은 흔들리는 땅 위에 임의의 지점을 ‘집’이라 부르고, 아끼는 마음을 주고, 하지만 이내 미워하며 떠나고자 몸부림치기를 왕복하는 추동을 펼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