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한솔 개인전: starry starry night
16 - 30 October, 2020

1.    

대학가의 광인은 저마다의 규칙대로 매일 미션을 완수하며 살아간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지속적으로 목격했던 광인은 두 명이었다. 광인 1은 극심한 거북목, 굵은 뿔테 안경, 철 지난 베이지색 모자, 돌출된 턱과 아랫니, 사시사철 고수하던 두꺼운 갈색 외투, 그리고 나무 지팡이로 특정될 수 있었다. 그는 주로 본관 근처에서 공중전화를 붙들고 무어라 호소하거나 인쇄소의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광인 2는 큰 키, 굵은 골격, 동그란 안경, 전체적으로 그을리고 부분적으로 흉터가 있는 피부, 얇고 누런 상의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중앙도서관이나 인문대 근처에서 책상 앞에 경제학 원론 류의 책을 펴 놓고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입학하기 한참 전부터 학교를 다녔다는 이들을 실제로 마주친 것은 고학번이 되어서였다. 그것은 아마 내가 6학기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1700원짜리 아침밥을 사 먹고, 늘 같은 자리에 가서 과제를 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생활을 일구어낸 후에야 말로만 듣던 이들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광인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여느 대학생처럼 지내고 있다는 안도감, 제대로 살고 있다는 확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오늘은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어차곤 했다. 가끔 같이 걷던 누군가 이들을 가리키며 ‘저분들의 삶이 궁금하다’거나 ‘먹을 거라도 사드려야 되는 게 아니냐’고 울상을 지으면 속으로 무척 분했다. 이들이 나에게는 짜릿하다 못해 지독한 동기부여 멘트보다 더 강력한 페이스 메이커였기 때문이다.

2.    

한솔은 장애물 코스를 제작하고, 그 위를 스스로 달리거나 퍼포머가 통과하도록 한다. <OBSTACLE RACE>(2017)에서 그는 미술대학 건물 내에 합판, 각목, 사다리 등으로 만든 허들과 미션을 신속한 몸놀림으로 완주한다. ‘회화 허들’, ‘파티션 다이빙’, ‘그냥 힘들게 짐 나르기’, ‘곰브리치 퀴즈’ 등 미술가가 되기 위해 혹은 미술을 지속하기 위해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고난이 나열된 경로를 통과하는 선수는 한눈을 팔거나 모멘텀을 잃지 않는다. 누가 불쏘시개를 들고 좇아오는 것도 아니고, 결승선에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진해서 참가한 레이스라면 응원하는 일만 남았는데, 그게 선뜻 되지 않았던 것은 연출된 상황에서 어떤 현실이 너무 투명하게 비쳐 보였고, 그 현실과 나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의 작업에 대한 지독한 의심에 시달렸던 것 또한 작업의 배경이나 행동이 나의 생활 반경과 겹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SPARTAN RACE>(2019)에서 경주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덩어리-존재의 몫으로 돌아갔고, 사심 없이 응원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요란하고 조악한 장애물이 놓인 레드카펫 위에서 펼쳐진 야외 경주는 양옆에서 웃고, 떠들고, 응원하는 관객과 함께했다. 선수들의 의지만큼은 훌륭했으나 몸이 영 거추장스러워 날쌔게 움직일 수 없었다. 넘어지고, 구르고, 슬쩍 장애물을 비껴가는 반칙을 쓰면서 그런대로 열심이다. 경주가 끝나고, 플라스틱 카트로 만든 포디움 위에 올라간 선수들은 메달을 받는다. 관객은 웃고 환호한다. 거리에 속한 이 존재들은 흰 천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유령이 아니라 이리저리 쓸리는 피부와 무거운 몸을 지녔다. 이들은 고유하면서도 익명이고, 연민이나 동일시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거리는 바짝 좁힌다. 다섯 덩어리의 레이스를 다른 무언가에 대한 메타포로 보고 싶지 않았다.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쟁 체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고,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세대의 고충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다발이와 축축이와 짐진자와 뾰족이가 행복했으면, 좋은 꿈을 꾸었으면 했다.

3.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발간됐다.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놓고, 누가 더 날카롭고 재치 있게 책의 메시지를 무력화할 수 있는지를 두고 한바탕 백일장이 열렸다. 인생의 유일한 굴곡이 대입 재수인 서울대교수가 얼마나 아파봤느냐, 흙수저는 아프면 정말 죽는다, 꼰대는 물러나라,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돌리지 마라… 타당한 비판도 있었으나, 김난도 심판자 중 유난히 시끄러운 일부는 그러한 메시지가 불필요했던 이들인 동시에 이를 평가할 수 있는 거리감을 지녔다는 점에서 오히려 김난도를 많이 닮아 있었다. 15년 전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이 화제가 되었을 때도 그랬다. 많이들 환호하고 감동하는 사이에 네가 스탠퍼드 학생도 아닌데 뭘 감동하냐고 초를 치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춘이니까 아플 수 있다고, 다 지나간다고,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뒷걸음질이 나중에는 연결되어 위대한 무언가가 될 거라는 복된 소식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부러 좁은 길을 선택한 구도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주 드물게 젊은 사람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을 진담으로 읊조리는 걸 목격할 때, 그 순전한 믿음과 거룩한 광기에 장내에 한기가 돌곤 했다. 그리고 나도, 교회 수련회에서 혼자 방언 못 받았다며 초조해하는 아이처럼 그 말에 속아 넘어가기, 광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기를 바랐다.

4.    

<Star pickers, 취재파일>(2020)에 등장하는 다섯 선수는 각자 미션을 설정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 사용한다. 하지만 각각이 설정한 목표 지점은 불분명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은 비효율적이며, 진척되는 정도를 알 수 있는 지표도 없다. 그저 눈앞에 가져다 놓은 것을 만지작거리고, 굴리고, 당기고, 밀며 합력이 ‘0’이 될 운동을 지속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물론, 이상이 애매한 만큼 희망의 정체 또한 모호하다. VJ는 속마음 – ‘이것들 뭐 하는 짓이지’ – 을 누르고 프로페셔널하게 이들을 소개한다.

적어도 시작과 끝이 있고, 한마음으로 응원해줄 관객이라도 있는 레이스보다 더 혹독한 이 기행은 동시대적 불안정성(precarity)과 호응된다. 불안정성은 불안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근미래의 안위를 맵핑할 우세한 준거가 부재한 상태다. 그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도 소속감으로 작동 전환되지 않으며, 인재상은 적응할 틈도 주지 않고 바뀐다. 한편, 이러한 불안정성은 계급 투쟁을 비롯한 정치적 아젠다의 생성 원리인 이분법을 기가 막히게 회피하기 때문에 결집과 연대를 낳지 못한다.

하지만 장애물 달리기를 지켜볼 때와 마찬가지 마음으로, 이 선수들을 어떤 거대한 흐름에 대한 병리적 징후로 보고 싶지 않다. 선수들은 주어진 시대에 대한 반응을 초과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오르미'는 말로는 상승을 연습한다고 하지만 정작 상승과 하강을 긴장과 너저분한 기구가 내는 소리를 즐기며 땅에 달라붙어 있다. '굴리미'는 정체불명의 돌을 굴리며 쓸데없이 헤맑고, 심지어 돌을 굴려온 궤적에 시간이 담긴다는 심오한 말을 한다. ‘다드미’의 관찰력, 심미감, 사려 깊은 마음, '당기미'의 집중력과 강인함, '저으미'의 끈기와 낙천성.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어도 소용이 없다. 자신의 활동을 해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5.    

정신승리는 낙오자, 이 시대의 절대 다수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구제책인 동시에 불안정 사회의 연료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은 곧 자기계발의 복음을 믿는 것과 직결된다. 저만의 질서에 몰입하는 것이 돌파구 혹은 ‘전복적’ 실천이 될 수 없으며, 각양각색의 자기조직법이 지배적인 기계에 가담하는 땔감이 될 때, 광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요구를 과잉충족하여 성육신한 존재다. 한솔이 소개한 광인-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를 ‘나’ 되게 하는 물질적, 정신적 활동을 알뜰하게 노동으로 환원하는 기계 바깥에 대한 욕망으로 이행된다. 온 존재로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 선수들은 그저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수련하는 구도자와 다름없다. 하강이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선수들의 상승 의지는 구조적 최면의 산물이 아니라 풍성한 삶을 위한 순수한 노력이 된다. 이렇게 과포화된 긍정의 힘은 상상력 너머에 있는, 물적·인적 자원이 전적으로 재배치된 집합체를 현재로 끌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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